
무화과를 처음 키울 때는 당연히 열매를 따먹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1년생 묘목’을 일부러 골랐고요. 인터넷 여기저기 찾아보니 1년생이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길래, 이제 곧 가지 끝에 열매가 톡 하고 맺히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한여름이 되도록 아무 소식도 없어서, 뭐가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그때 알게 됐습니다. 1년생 나무라고 해도 ‘가지’가 1년은 지나야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집 무화과는, 열심히 잎만 자라나고 있었던 거죠. 나무는 아무 약속도 안 했는데, 제가 혼자 기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알고나니 마음이 좀 풀렸고, 잎만 무성한 이 모습도 나름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열매 대신 잎을 즐기기로 마음을 바꿨어요. 요즘은 물을 줄 때마다 잎을 한 번씩 쓰다듬고, 햇빛 아래 반짝이는 잎맥들을 들여다보며 여름을 견딥니다. 빠르게 뭔가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 느린 리듬 덕분에 오히려 매일 한 번씩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잎이 아까워서 뭔가를 활용해보고 싶었는데, 콤부차 2차발효할 때 넣어봤더니 생각보다 엄청 잘 어울렸습니다.발효 중에 무화과잎이 찻물 속에서 서서히 향을 풀어내면서, 콤부차 특유의 산미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무화과의 향이 진하게 스며듭니다. 아직 딱 정해진 레시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며칠 발효 후 병을 열었을 때 발산하는 무화과 향이 마음에 듭니다.
열매는 없지만, 이렇게 잎으로도 즐길 수 있는 것이 있다는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자라는 가지를 기다리는 시간도, 그 잎을 쓰는 과정도 전부 계절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올해 여름은 무화과잎 하나로 충분히 괜찮았고, 내년쯤엔 열매를 맺을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그냥, 잎만 보며 즐기는 걸로:).